I.
해가 진다.
집 안이 어두워진다.
감각의 수위 (守衛) 가 마지막 순찰을 돈다.
오늘 눈이 본 것, 귀가 들은 것, 손이 닿은 것 — 수백만 개의 정보.
그가 손을 한 번 털자, 대부분이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
수위는 외롭지 않다.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잊혀지는 것이 제 일이라는 것을.
II.
집 안쪽, 작업실에 불이 켜진다.
일꾼 (工人) 이 나타났다.
그가 한 번에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오늘 살아남은 것들이 하나씩 그의 손가락 위에 앉는다.
하나, 둘, 셋 — 다섯, 여섯.
마침내 두 손이 가득 찼다.
일꾼은 묻지 않는다.
왜 모든 것을 붙잡을 수는 없을까.
그는 다만, 가진 손가락으로 꽉 쥔다.
잠깐 한눈을 팔면, 붙잡고 있던 것들도 희미해진다.
III.
밤이 깊어지면, 지혜로운 이가 깨어난다.
사람들은 그를 해마 (海馬, hippocampus) 라 불렀다.
집 안에서는 그냥 현인 이라 부른다.
현인은 낮에도 기억을 받아들인다.
밤이 되면, 낮에 만난 기억들을 다시 살핀다.
일꾼에게서 받아 온 기억들 — 아직 따뜻하고, 아직 날것인 것들 — 을
현인은 조용히 들고 계단을 오른다.
한 권, 한 권.
책장에 꽂는다.
조심스럽게. 조용하게.
잠든 사람은 모른다.
자기 집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IV.
별빛 같은 이가 있다.
그는 이름이 없다.
사람들은 훗날 그를 헤브 (Hebb) 라 불렀지만,
집 안에서 그는 그냥 연결하는 자 다.
규칙은 하나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기억하면,
그 옆 책이 흔들린다 — 어린 날의 부엌, 국그릇 소리, 따뜻한 빛.
연결하는 자가 실을 잇는다. 가만히.
한 기억이 잠들 때, 그것은 혼자 자지 않는다.
옆 기억의 손을 잡고 잠든다.
V.
모래시계가 있다.
그 이름을 부른 사람은 에빙하우스 (Ebbinghaus) 였다.
현인도 연결하는 자도 그의 이름을 모른다.
다만, 모래시계는 집 안 어딘가에 항상 있다.
살아남는 책이 있다.
자주 꺼내 읽힌 책.
손때가 묻은 책.
현인이 여러 번 다시 올려놓은 책.
그 책들은, 모래가 흘러도 — 책장에 남는다.
나머지는 조금씩 흐릿해진다.
그것도 잔인하지 않다. 집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
VI.
아침이 오기 직전, 손 하나가 나타난다.
이름은 없다. 다시 적는 손 이라 부른다.
어젯밤 현인이 꽂아둔 책 — 오늘 아침 꺼내 읽히면,
그 손이 조용히 다가온다.
그리고 — 다시 쓴다.
기억은 봉인된 책이 아니다.
떠올린 기억은 때로 다시 적히기도 한다.
오늘의 나로. 오늘의 온도로.
그래서 어린 시절 기억은 해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다시 적는 손은 조심한다.
새로 들어온 빛이 오래된 글자를 바꾸기도 하기 때문이다.
VII.
아침이 왔다.
감각의 수위가 다시 문을 연다.
손가락을 다시 핀다.
집 안에는 아직 모르는 방이 있다.
지금껏 아무도 꺼내보지 않은 책이 있다.
수위는 오늘도 손을 턴다.
일꾼은 손가락을 준비한다.
현인은 새로 들어오는 책들을 살핀다.
연결하는 자는 실을 들고 기다린다.
모래시계는 조용히 흐른다.
다시 적는 손은 오늘 밤을 기다린다.
그리고 집은 — 살아있다.